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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소식·운동으로 '건강 수명' 늘려 [황세희 박사의 '몸&맘']

"장수 시대는 과연 인류에게 축복이기만 한 걸까요?" 지성과 인격을 겸비한 정신과 의사 M씨.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그는 선택받은 중년 남성이다. 그가 장수 시대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현대의학 덕분(?)에 아픈 상태로 오래 살게 되는 노후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건강 수명은 평균 수명보다 11년 짧다. 노년기 11년을 투병 생활로 보내는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M씨의 걱정은 인간의 끝 모를 욕망이다. "공자님은 마흔이면 불혹, 쉰 살엔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하는데 요즘엔 60대, 70대에도 욕망 때문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는 연일 보도되는 국내외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 소식을 접하면 장수 시대의 슬프고 불행한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사실 최근에도 전 세계를 불황의 공포로 몰고 가는 미국 월가의 주역들이 천문학적 보너스를 챙기는 사연, 국내 지도층 인사들의 탈법 행위나 뻔뻔스러운 거짓말 등이 매일 전해진다. 이들 중엔 노욕을 채우고자 수많은 사람을 분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노년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경제 발전과 보편화된 현대의학은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79.1세로 높였다. 정부 수립 해인 1948년 46.8세에서 30년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런 고령화 현상은 앞으로도 급속히 진행돼 현재 10% 이상인 노인 인구는 10년 후엔 약 15%, 20년 후엔 2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떻게 하면 장수 시대를 개인과 사회 모두의 진정한 축복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의학계에선 크게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건강 수명을 늘리는 일이다. 실천법은 '평생'동안 꾸준하게 소식과 운동을 통해 정상 체중과 정상 혈압을 유지하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할 것. 그리고 금연과 절주하기로 요약된다. 노욕을 줄이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묘안으로 정신의학계에선 인생의 전·후반기에 주어진 각각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을 권한다. 우선 청·장년기 땐 부지런한 사회활동과 성취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외향적인 활동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성숙한 인생에 도달하기 위한 초석을 깔아 준다. 만일 젊을 때 세상이 두렵고 불안해 사회생활을 회피한다면 환경과 조화를 못이루게 되면서 불안증·우울증·공포증 등 신경증이 발생한다. 반면 중년기부턴 내면의 본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방법은 무의식을 통한 자아 실현, 종교를 통한 진리 탐구, 문화생활 등 다양하다. 즉, 중·노년기에도 젊을 때처럼 끊임없이 외적인 성취욕에 집착하는 사람 역시 정신이 병든 상태로 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현실적인 만족감을 얻기 위한 욕망 추구는 끝이 없다. 만족감의 정체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인데 목적 달성 이전, 즉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분비되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룬 순간 만족감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어느새 새로운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인간은 내면세계를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죽는 날까지 중형차를 타면서 대형차를 탐내고, 대형차를 산 뒤엔 고급 외제차를 갈망하는 욕망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 황세희 박사

2020-04-28

코로나 감염 20%만 입원 필요…'맞춤형 처방' 중요

100년 만에 찾아온 세기적 역병(疫病)이 봄꽃의 향연을 밀어내는 잔인한 4월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팬데믹)은 지구촌 성장 열차를 후진시키며 전례 없는 경기 불황을 예고하는가 하면, 베이징과 뉴델리의 하늘을 눈부신 파란색으로 되돌려 놓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청정한 지구가 한배를 타기 어렵듯 코로나19 대책도 경제 활성화와 생명 수호 중 한쪽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영악한 본질과 21세기 첨단 의료 장비가 합심해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을 시험하는 모양새다. 집단 면역 인구 60% 걸려야 가능 사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11일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는 것은 지금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전염병 확산을 막기 힘들다는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또 대유행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집단 면역(Herd Immunity)'에 필요한 인구수는 바이러스 종류에 따른 재생산 지수를 통해 도출되는 객관적 수치다. 인간의 희망에 따라 증감시킬 수 없다. 코로나19는 환자 한 명이 평균 2.5명을 감염시키니 집단 면역은 '(2.5-1/2.5)×100(%)'이라는 계산에 의해 인구의 60%가 걸려야 얻을 수 있다. 즉, 국내는 3000만 명, 세계적으로는 45억 명이 감염돼야 집단 면역을 가진 사회가 된다. 지금의 대유행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신종 바이러스의 본질이 이러니 유행 초기에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호기롭게 조기 승리를 외친 정상들은 모두 민망한 상황에 처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존슨 총리다. 그는 지난달 14일 집단 면역 운운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잃겠지만 일상을 유지하라"고 발표했다가 며칠 뒤 외출 금지와 상점 폐쇄를 지시한 것은 물론 황태자와 본인의 감염 사실까지 밝히는 처지가 됐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부활절(4월 12일)부터는 경제 활동을 정상화하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가 이틀 만에 미국의 확진자 수가 세계 1위가 되면서 체면을 구겼다.사실 25억~40억 년 전부터 지구촌에 정착해 온 바이러스의 존재감을 인지하면 신종 바이러스를 단기간에 박멸하겠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외침은 무모하고 공허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바이러스의 존재를 감지한 것은 19세기 말이며 형태를 알게 된 시기도 전자현미경이 개발된 20세기 이후다. 따라서 지금의 팬데믹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면 무엇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피해를 줄이면서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제2의 사스(SARS-CoV-2)'로 명명될 만큼 2002년 사스(SARS-CoV)와 외형이 닮았다. 하지만 치사율을 낮추고 전염력을 대폭 강화한 낯설고 영악한 모습으로 노약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실제 코로나19가 보여주는 행태는 1918년부터 2년간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 스페인 독감과 닮았다. 당시 원인 바이러스(인플루엔자 H1N1)는 5억 명 이상의 감염자와 2000만~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나서야 치사율을 0.1%로 낮춘 상태로 지금까지 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발달한 초고속 교통망, 지역별 봉쇄 조치, 여름철 활동성 약화 가능성 등을 고려해 코로나19가 내년 봄까지 유행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코로나19를 제어할 효과적인 백신이나 치료제는 정치인이나 해당 업계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희망적이지 않다. 코로나19는 에이즈처럼 변이가 심한 RNA 바이러스라 대유행 종식 전에 백신이 출시되기는 어렵다. 신약 개발도 요원하며 기존의 다른 바이러스 치료제 중에서 효과적인 약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감염자 중 80%가 경증이라는 사실이 다소 위로를 준다. 하지만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폐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20%는 되는 셈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초래하는 폐렴 증상은 기존의 폐렴과 판이한 경우가 많아 진료현장을 당황스럽게 한다. 예컨대 폐 CT 검사상 심한 폐렴처럼 보이는데 실제 환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가 하면, 아침에 심해 보이지 않던 환자가 반나절도 안돼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중환으로 급속히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의 위기 상황을 지켜주는 집중 치료다. 폐렴이 악화하면 신속하게 인공호흡기를 걸어주고,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을 체외 순환시켜주는 에크모를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치료가 첨단 장비를 활용해 수시로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 조작을 해야 하다 보니 숙련된 의료진이 필요하다. 혹여 한꺼번에 중환자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모든 환자가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 불가능하다. 실제 외국보다 상황이 양호한 한국에서도 유독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경북이나 대구 등지에서 사망률이 높다. 경제 살리기·생명 존중 두 개의 칼날 예를 들어 집단 면역이 생길 때까지 폐렴 환자가 3만 명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하루 300명씩 100일간 발생하는 식으로 자연 상태로 방치할 경우 중환자실 부족 등으로 사망자는 폭증하지만 이른 시일에 경제 활동은 정상화될 것이다. 반면 휴교, 집회 금지, 대중교통 제한 등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지속해 폐렴 환자가 하루에 80명 수준으로 1년 내내 발생한다면 코로나19 희생자는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다. 물론 경제 침체는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우선순위에 뒀던 영국은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가 26만 명의 사망자 발생 위험이 제기되면서 화급히 사망자를 2만 명까지 줄일 수 있다는 두 번째 방법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과연 국가 경제와 국민의 생명권이라는 두 개의 칼날 위에서 세계 각국은, 또 한국 정부는 어떤 저울질을 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 출구 전략을 펼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이는 날까지 역사적으로 진행되는 각국의 팬데믹 대처 상황을 관찰해볼 일이다. 황세희 /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2020-04-07

속도 빠른 코로나19, 심각한 후유증 드물어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과 함께 불안과 공포 심리도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이성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은 언제나 이성을 삼켜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도 공포 마케팅과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실 감염병 유행은 인간의 두려움과 분노를 자극해 정신 건강도 해치기 쉽다. 불행히도 인류는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서 쌓이는 공포·불만·반감·증오 등을 없애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 일을 반복해 왔다. 모든 문제를 희생양에 전가함으로써 긴장과 불안을 손쉽게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갈등 해소 효과만 볼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죄의식을 남기고 우울증과 트라우마도 초래하기 쉽다. 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불안·분노·공포는 잠시 접어둔 채 코로나19의 정체를 파악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 당뇨 등 지병 있는 노약자 취약 코로나19의 강력한 확산 능력은 이미 중국 환자 4만 명 중 81%가 경증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통해 예견됐던 바다. 병을 가볍게 앓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웃에게 바이러스를 전해준다. 이런 환자가 80% 이상인 셈이다. 게다가 이 신종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호흡기 점막에 침입하는 능력(점액 친화력)을 50배나 높였다. 그래서 소량의 바이러스만으로도 환자를 만들고 또 일단 체내에 들어가기만 하면 증식도 활발하다. 감염 초기부터 전염성이 강한 이유인데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전염력이 없는 사스나 메르스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코로나19의 성질이 이러하니 우선 당분간 '2m 이내 접근 금지'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동참해야 한다. 감염병이 두려운 이유는 사망률과 후유증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사망률은 국가별 차이가 크지만 의료의 질도 높고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0.5~1% 선으로 추정한다. 참고로 겨울철 불청객 독감의 치사율은 0.1% 정도며, 사스 사망률은 10%, 메르스는 국내에서도 20%의 치사율을 보였다.(중동은 30~40%) 사실 한국 의료의 선진성은 세계가 놀라는 방대한 코로나19 검사 숫자만으로도 확인된다. 환자가 확진되자 동선을 샅샅이 추적해 밀접 접촉자 모두를 검사했기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효과적인 검사를 대량으로, 또 비교적 저렴하고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덕분이다. 실제 일본이 한 달간 시행한 검사를 국내에서는 하루에 실시한다. 그 결과 한국은 순식간에 세계 2위의 코로나19감염국이 됐다. 지금의 검사 방식 덕분에 대한민국이 코로나19의 역학 분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의료 선진국으로 평가받을지, 아니면 전염병이 창궐한 나라로 기억돼 상당 기간 여행 기피국으로 남을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코로나19는 유독 지병이 있는 노약자를 괴롭힌다. 하지만 노약자도 미리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설사 사망률이 10%인 고위험군이라 하더라도 건강하게 회복할 가능성이 90%다. 또 병을 이길 면역력 향상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다행히 코로나19는 심한 폐렴을 일으키더라도 폐 섬유화 같은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는 아직 드물다. 간혹 바이러스 본질이 심한 변이성에 있다 보니코로나19의 치명적인 돌연변이 가능성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새로 나타난 바이러스는 사람-사람 간 전파를 통해 변이를 일으킬수록 병독성은 약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2005년 유행했던 사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 역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강한 성인은 덴탈 마스크 무방 코로나19 로 인해 일상에서 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마스크 대란이다. 물량 공급의 문제뿐 아니라 방역 대책도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끊임없이 일회용 마스크 착용을 강조했다. 그러다 환자가 급증하고 마스크 대란이 지속하자 보건용 마스크의 재사용을 홍보하더니 마침내 지난 3일에는 "마스크는 의료진이 환자 진료를 하거나 바이러스에 노출 가능성이 높을 때 착용하면 된다"며 CDC(질병통제예방센터)도 권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CDC 지침을 한국내에도 적용해 마스크 대란을 소란 수준으로는 막았어야 했다. 사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라 전문가들도 대처 방안에 대해 이견이 있다. 또 대책 자체를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 일례로 마스크도 매번 비누로 꼼꼼히 손을 씻은 뒤 코와 얼굴에 빈틈없이 밀착시켜서 착용해야 하고 무심코 만져서도 안 된다. 이런 지침을 실천하다보면 딥답하고 숨쉬기도 편하지 않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감염내과 교수들이 환자 접촉이 없는 건강한 성인에게 방역 마스크 대신 치과 진료 때 사용되는 일회용 마스크(덴탈 마스크)를 쓰라고 조언했던 이유다. 참고로 마스크 재활용법은 미국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에 있는 응용연구협회 공학 분과의 데빈빌즈 등의 연구진이 2018년 미국의 감염병 통제 잡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주목해 볼 만하다. 이들은 15종류의 방역 마스크(N95)를 대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묻힌 뒤 일정량의 자외선을 1분간 조사한 결과 12개 제품에서 자외선 조사 후 바이러스가 의미 있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만일 국내에서도 효과가 검증된다면 동사무소나 아파트 주민센터 등에 비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코로나19 종식 시점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하버드 보건대학교 립시치 교수는 1년 이내에 전 세계 성인 40~70%가 감염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런데도 치료제, 백신, 변이 과정을 통한 바이러스 약독화 등을 고려하면 감염 시기는 늦출수록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좋다. 현재로써는 저마다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면서 담담한 마음으로 코로나19의 운명을 지켜보는 게 최선인 듯싶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2020-03-24

에이즈 환자 '예비 범죄자' 아니다 [황세희 박사의 '몸&맘']

최근 한국에서 남성 에이즈 감염 택시기사가 6년간 여성들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진 일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에이즈 관리 소홀에 대해 비난이 일고 있다. 전염성을 알면서도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은 것은 분명 범죄행위다. 감염자가 확인되면 중상해죄가 적용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감염자의 성생활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현재 6000명이 넘는 감염자를 1대1로 24시간 감시하려면 60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 더 난감한 일은 등록된 감염자보다 실제 감염자가 3배(2~5배)는 된다는 점이다. 이들 2만여 명에 대한 관리는 무슨 수로 할 것인가. 또 철저한 감시.관리를 할 때 초래될 인권침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즈 감염자는 국가가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야 하는 예비 범죄자가 아니며,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이다. 그저 사랑했던 연인에게서, 수혈을 잘못 받아, 감염자 남편 혹은 아내를 둔 죄로 본인도 모르게 난치병에 걸린 불운한 사람일 뿐이다. 의학적으로 에이즈는 감염자의 혈액.정액.질액 등을 접촉해야 감염되며 일상생활에선 감염되지 않는다. 감염 가능성은 개개인의 면역상태, 환자의 혈중 바이러스 농도, 전파 방식 등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수혈 땐 100%, 바늘에 찔리면 0.3%다. 성관계도 남녀 간 성접촉은 0.1%, 항문 성교 0.8%며, 이 수치는 성기에 궤양이나 상처가 있을 때 증가한다. 또 여성의 감염 가능성은 남성보다 8배 높다. 전염력이 가장 높은 시기는 바이러스가 폭증하는 감염 초기와 말기다. 실제 치료받는 감염자보다 초기.말기 환자의 혈중 바이러스 농도는 1만 배 이상 높다. 의학적으로 가장 위험한 시기는 초기다. 혈중 바이러스 농도는 높지만 혈액검사에선 음성(-)으로 나와, 본인은 감염사실조차 모른 채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감염 여부는 3주~3개월 후 항체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다행히 1996년 치료법이 개발된 이후 에이즈는 당뇨.고혈압처럼 만성병이 됐고 전염 위험성도 줄었다. 실제 세 종류의 약을 제대로 복용하면 3~6개월 후부터 혈중 바이러스 농도는 측정이 안 될 정도로 낮아진다. 물론 이때도 바이러스가 림프구에 숨어 있을 뿐 박멸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감염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따라서 성관계 땐 콘돔을 써야 한다. 치료제 개발 이후 감염자의 생존기간은 20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자연 국내 에이즈 감염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당국이 진정 에이즈 퇴치를 원한다면 환자에 대한 감시.감독보다는 지속적인 예방교육에 힘쓰면서 감염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3-10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황세희 박사의 '몸&맘']

불륜은 인간이 극복하기엔 너무 힘든 악마의 유혹인가. 연예계 스타.정계 거물.재계 총수.예술계 거장 등 돈.명예.권력 등 현세적 가치를 거머쥔 유명인사(celebrity)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불륜 스캔들을 만들어낸다. 21세기 서구화된 사회의 특징은 불륜 영역에 힘 있는 남성뿐 아니라 매력과 경제력을 갖춘 여성도 가세한다는 점이다. 불륜(외도)의 뿌리는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후대에 많이 남기고 싶은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다. 진화인류학적으로 일부일처제는 문명화된 생명체인 인간이 사회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 본능을 억누르는 사회제도로 도입한 것이다. 불륜은 본능(종족 번식)과 사회제도(일부일처)가 충돌한 결과물인 셈이다. 종족 번식 본능은 남녀 간 구별이 없으며, 불륜 유혹도 남녀가 공유한다. 단 여성은 불륜 욕망을 잘못 충족시킬 경우, 임신과 출산이란 업보를 전담해야 하기 때문에 유혹의 상황에서 남성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끔 뇌에 각인돼 있다. 불륜 사건이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빈발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성인은 누구나 최대한 많은 이성과 성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힘겹게 사는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출생 후 성욕을 실현할 때까지 장기간(15년 이상)에 걸쳐 양육과 교육(훈육)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성에 대한 정체성과 이성에 대한 성실성의 중요함을 깨닫고 본능과 사회적 제도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법을 배운다. 따라서 이 일련의 과정에 문제가 있을 땐 불륜을 쉽게 저지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이 성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5~7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자신과 다른 성을 가진 부모에게 연정을 느끼는 본능, 즉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이 콤플렉스를 적절히 해소하려면 어머니의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만일 어릴 때 애정 결핍 상태로 자랐다면 성인이 돼서 성욕을 아무렇게나 발산하는 습관성 바람둥이가 되기 쉽다. 성장기 윤리 교육을 못 받았거나 충동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도 불륜을 쉽게 저지른다. 따라서 어린 아이라도 거짓말이나 억지를 부릴 땐 매번 단호하게 '노(NO!)'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잘못과 충동 조절법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오이디푸스 시기를 잘 극복하고 이런저런 훈육을 잘 받았더라도 욕망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하면 유혹을 100% 떨치긴 힘들다. 유명인사들이 수시로 불륜 스캔들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이유다. 또 보통 사람이라도 욕망은 강하고 충동 억제력이 약한 사람,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 이성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사람, 스릴을 통해 쾌감을 얻는 자기 파괴형, 심한 변덕쟁이, 죄의식이 결여된 성격 장애자 등은 한두 번의 불륜 단계를 넘어 습관성 외도로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유야 어찌 됐건 습관성 외도는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해로운 결과를 인식하고 고쳐 나가는 치료를 3년은 받아야 하는 의학적 치료 대상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3-03

욱하는 성질, 무감각한 성격, 둘 다 병이다 [황세희 박사의 '몸&맘']

'강구연월(康衢煙月)'.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원하는 심정을 담았다고 한다. 요약하면 행복한 삶이다. 의학계에선 행복한 일상을 꾸리기 위해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의 원만한 성격을 필수요소로 꼽는다. 성격이상자 한 사람만 있어도 갈등과 분열, 긴장이 조성돼 불안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고난 천성과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단 성격이 형성되면 고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성격이상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조차 매일 한 시간씩 전문적인 상담을 2~3년간 지속해도 성격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고 못박는다. 치료 목적은 그들에게 갈등을 줄이는 행동법을 반복해 익히게 하는 게 고작이다. 현대사회에선 직장이나 사회에서 알게 되는 지인, 사랑하는 연인이나 배우자 등 나와 인연을 맺는 대부분의 사람을 이미 성격이 형성된 성인기에 만난다. 따라서 일상에서 불화를 줄이려면 내 주변 사람의 성격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또 성격 문제가 심각한 사람일수록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의도 자체가 없다. 결국 성격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그(그녀)와의 공존을 원 할 때 내게 주어진 선택은 상대방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아니면 그(그녀)와의 공유하는 순간을 줄이는 것, 이 두 가지뿐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과의 갈등과 분열, 조성하는 성격이상자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크게 마음속의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폭발하는 유형, 혹은 매사에 로봇처럼 무감동한 반응을 보이는 타입 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양극점에 있는 듯싶은 이 두 가지 성격(증상)은 정신의학적으로는 모두 인격장애가 병적으로 심각할 때 나타난다. '욱'하는 감정을 원시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타인의 작은 실수에도 큰 분노심을 나타내며 쉽게 폭력적으로 변한다.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된 탓인데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다른 사람과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 역시 경계 대상이다. 이들은 남의 불행한 상황을 보고도 슬퍼하거나 안됐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행동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흔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술맞은 심리하고도 달라서 감정 자체가 무덤덤하다. 생명체를 무생물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병든 탓이다. 역시 교정하는 약물이나 수술법이 없다. 따라서 정신의학자들은 '행복한 일상을 위해선 성격이상자들과는 가급적 공유하는 순간을 줄이도록 하라'는 다소 비인간적으로 들리는 조언을 한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2-25

비행청소년·불법낙태 손가락질 하기 전에 … [황세희 박사의 '몸&맘']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시절의 사연이다. 하루는 두 돌을 갓 넘긴 사내 아이가 의식불명으로 응급실로 실려왔다. 뇌 촬영상 뇌를 둘러싼 막에 피가 고인 '경막하 출혈'이 발견됐다. 보호자는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두 살 배기가 스스로 넘어져 경막하 출혈이 생기긴 힘들다. 분명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보호자가 잠깐 화장실 간 틈을 타 아이의 옷을 들춰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몸 여기저기에 멍든 자국이 보인다. 뇌출혈 원인은 아버지의 잔인한 구타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입원 치료로 보름 후 의식을 회복했다. 까까머리에 눈이 유난히도 크고 맑았던 진이는 남편의 구타를 피해 가출을 반복했던 어머니에게선 방치됐고, 어머니 가출 땐 아버지의 구타 대상이 됐다. 진이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도 또다시 학대는 반복될 것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선 부모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치료가 필요했다. 곧바로 정신과 의사의 부모 상담이 이루어졌다. 부모 모두 정신 기능은 정상이었다. 그러나 심하게 무책임하고 소심한 아버지, 무기력한 어머니가 부모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에게 진이의 존재는 그저 인생의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진이 부모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부모 역할을 배우기 위한 전문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란 의견서를 남겼다. 물론 그들은 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지속적인 상담 치료를 받을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진이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북유럽 국가로 입양됨으로써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얼핏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도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선 해외 입양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면서 '과연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진이 같은 아이를 입양할 의지가 있는 걸까?' 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진이가 죽음의 문턱에 갈 때까지 국가가 진이를 위해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산부인과 의사가 동료 의사의 불법 낙태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회 각계 각층에서 낙태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이고 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생명이 있기에 소중한 마당에 하물며 인간으로 탄생할 태아를 제거하는 일에 선뜻 찬성할 파렴치한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불법 낙태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 이후 '열여섯 살 딸이 남자 친구와 어울리다 임신을 했는데 학교 그만두게 한 뒤 미혼모로 만들어야 하나?' '애 키울 상황이 못 돼 빚 내서 해외 원정 낙태하려 한다. 혹시라도 낙태해 주는 병원 알려주면 은혜 잊지 않겠다'는 식의 안타까운 사연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동안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얼마나 책임 있게 감싸 안았던 것일까. 학대받은 아이가 비행을 저질렀을 때 그 지경까지 아이를 방치한 우리 모두에 대한 반성보다는 "한심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저런 행동이나 한다"며 비난의 목소리만 높였던 건 아닐까.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2-11

진영 갈려 헐뜯는 세태…진실 기다리며 평정심 유지해야

정신이 건강하려면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멋진 교양인이 되려면 본인의 생각을 지나치게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관점에 따라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명백한 사실로 보이더라도 생각이 나와 다를 땐 수긍하기보다는 분노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개인차는 있지만 통상 자신의 기대와 상반되는 현실이나 치부를 직면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단 본능적으로 진실을 덮거나 외면하고 싶어한다. 심적 고통을 피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전략적 반응이다. 정신의학은 우리 뇌가 인격 발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또 내적 욕망과 주어진 현실 그리고 꿈꾸는 이상 간의 차이가 빚어내는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기교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이나 충동.생각은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 둔 채 의식 세계에서는 자신도 알아채기 힘든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예컨대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억압이라는 방법을 활용해 '기억 상실'로 나타날 수 있다. 자기 잘못이나 욕망을 그럴듯한 해명이나 이유로 설명하는 합리화도 많이 사용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속상한 일이다 보니 핑계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정신적 메커니즘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아니다, 틀렸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부정(否定)이다. 권력자들이 청문회 등을 통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변명할 때, 또 TV 토론회에서 유명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궤변을 늘어놓는 순간에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큰 이익을 위해 거짓말과 왜곡.은폐.막말 등을 사용하는 일은 권력자든 장사꾼이든 가릴 것 없이 쉽게 한다. 이런 현상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미어샤이머 교수는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특히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자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그 위험성에 대해 국민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 워싱턴포스트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하루 평균 13번씩 거짓말이나 사실 왜곡을 했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첨단 과학의 발달은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실제 지금은 위법 행위 장면을 누구나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으며 증거 인멸도 포렌식 기법으로 대처한다. 범죄 발생률과 관련된 외국의 연구 결과도 뉴욕 등 대도시의 범죄율을 현저히 낮춘 일등 공신은 시민의 도덕성 회복이 아니라 화질 좋은 감시카메라(CCTV)임을 보여준다.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의 실체 역시 개인적 희망이나 추측과 무관하게 조만간 드러날 것이고, 보다 성숙해진 시민 사회는 지속해서 전개될 것이다. 진중권 교수가 말한 "진영 싸움에 미쳐버린 윤리적 패닉 상태"처럼 보이는 현 상황도 역사 발전을 위한 인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궤변, 거짓말, 가짜 뉴스 등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진영의 입장을 주장하더라도 선량한 시민들은 평정심과 용기를 가지고 객관적 진실을 확인하면 된다. 지금처럼 사회적 논란인 사안을 두고 진영 간 대립이 심해지는 시대일수록, 나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나쁜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상습적인 마약 복용자나 중범죄자에게도 팬을 자처하는 그룹은 항상 존재한다. 수 십명의 여성을 엽기적 방법으로 살해한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에게도 교도소로 수많은 팬레터가 도착했고 심지어 재판 중에 그와 결혼해 딸을 낳은 여성까지 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현상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했던 인물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한데 대부분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니 객관적 이해가 애초에 불가능한 타인의 행위를 무작정 비난하는 일은 성숙한 성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출생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켜켜이 쌓인 개개인의 역사는 어차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또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특성과 취향을 인정할 능력을 갖추려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한 본성을 믿고 자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칸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1989)한 영화 '야바(Yaaba)'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부당하게 마녀 취급을 받는 할머니와 열 살 소년의 우정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승화된 사랑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소년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할머니에게 "저들이 왜 괴롭히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분심을 표현하는 대신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답한다. 할머니는 자신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악행이 사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한 폭력과 미움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야바'의 주인공처럼, 진정 자신을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언행은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가족도 이웃도 평생을 왕래하면서 함께 지내고 싶어한다. 믿음이나 사랑처럼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고귀한 것은 결코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없지 않은가. 황세희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대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등 인기 칼럼을 연재했다. 황세희 박사

2020-02-04

비행 청소년은 '품행장애' 환자 [황세희 박사의 '몸&맘']

정신의학적으로 비행 청소년은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 치료해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만일 치료를 못 받고 방치될 경우, 비행이 일상화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하기 쉽다. 가족·학교·사회가 합심해 비행의 싹부터 다스려야 하는 이유다. 비행은 사춘기 때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일탈 행동과는 다르다. 의학적으로 비행 청소년은 '품행 장애(Conduct Disorder)' 환자에 해당한다. 진단은 통상 남학생 10~12세, 여학생 14~16세면 내릴 수 있다. 즉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행동과 금기사항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12세 이후에도 싸움·도벽·가출·규칙 위반 등을 6개월 이상 반복할 때 의심해 볼 수 있는데 여학생은 가출이나 거짓말을 반복하고 남학생은 폭력을 쉽게 행사하는 게 특징이다. 초등학생 땐 문제아나 말썽꾸러기로 통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 정신의학자들은 천성이 고약한 아이가 옳고 그름에 대한 훈육을 제대로 못 받아 충동 조절을 못할 때 품행 장애 환자가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녀가 비행을 보일 땐 곧바로 부모 자신의 잘못된 양육 태도부터 반성한 뒤 전문가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철 들면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방치하면 범죄의 길로 빠져들기 쉽다. 품행 장애 치료는 원인에 따라 다르지만 1년 이상 지속돼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예컨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매사 충동적인 아이는 리티움 같은 약물치료가 효과적이다. 남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아이에겐 항정신병 약물이 도움을 준다. 물론 약물 치료뿐 아니라 자신의 문제 행동을 반복해 지적하고 수정해 주는 행동치료도 병행돼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흉악범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형량이 강화된다고 범죄가 예방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예방책은 하루빨리 부모·학교·의료계 등이 합심해 비행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치료·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불우한 환경에 놓인 비행 청소년이나 보호자가 자발적으로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1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을 가능성은 드물다. 지금은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비행청소년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1-28

몸에 좋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당신 [황세희 박사의 '몸&맘']

'젊게, 더 젊게, 더 더 젊게'. 21세기 의학계의 화두는 '회춘'이다. 20세기 현대의학은 막 작동을 멈추려는 오장육부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성과를 올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새 생명을 얻는 기적이 하나둘씩 현실화되면서 평균수명도 급속히 증가했다. 과거엔 손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은퇴를 준비했을 중년층이 지금은 청년들과 더불어 한창 왕성한 사회활동을 한다. 동시에 "잃어버린 청춘기를 되찾겠다"는 야심 찬 회춘 노력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노력의 결과가 가장 눈에 띄게 확인되는 부위는 뼈와 근육이다. 적절한 운동을 통해 근력과 체력이 향상되면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온몸의 찌뿌듯함, 여기저기 결리는 듯한 증상이 사라지고 혈색과 피부 탄력이 좋아진다. 체력이 향상되고 활력을 되찾게 되면 회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노화의 지표인 주름살을 없애는 일이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게 마련이다. 질병을 치료하던 병원에선 차츰 미용 시술이 활발하고, 각종 시술법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펴는 보톡스 주사, 파인 주름을 채워주는 각종 필러(filler) 주입, 피부 속에 일종의 화상을 입혀 피부의 재생과 탄력을 얻는 각종 레이저 시술 등이 진행형이다. 이런 시술을 받고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부유층 여성일 거란 통념과 달리 남몰래 치료받는 중산층 남성들도 큰 몫을 차지한다. 피부 결이 개선된 뒤엔 노인의 징표인 누런 치아 대신 청년의 고운 아이보리색 치아로 바꾼다. 노안 수술을 받아 은은한 조명의 레스토랑에서 돋보기를 착용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하는 노인들이 회춘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의 노화 치료는 결국 미봉책일 뿐이다. 이런 현실은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쉽게 인정할 수 있다. 2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 지구란 행성에 인간으로 태어났던 그들 중 99.9% 이상은 50세 이전에 사망했다. 지금도 아프리카 짐바브웨나 아프가니스탄 등 현대의학의 혜택에서 소외된 주민이 많은 국가의 평균수명은 40세 정도에 불과하다. 즉,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길어야 50년쯤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지금 인류의 당면 과제는 반세기 만에 갑작스레 30년 이상 길어진 평균수명과 호모사피엔스의 생명체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일이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맞게 심신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항노화 치료법에 의존하기보다 하루하루 소중한 내 몸을 조심스레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음식도 소화기가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섭취하고, 일도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피로하지 않을 만큼 하자. '이번 한 번만…'이라며 몸과 마음에 과부화를 거는 '무리수'를 반복하는 일은 노화를 촉진하고, 수명을 단축하는 지름길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1-21

근친 강간 예방 시스템 필요 [황세희 박사의 '몸&맘']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열 살 된 예쁜 소녀가 축농증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이에 안 맞게 멍하고 우수에 찬 표정 때문이었다. 일단 아이를 간호사와 함께 진료실 밖으로 내보낸 뒤 나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은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고민거리를 해결해 줘야 될 것 같아요." 어머니는 1년 전, 삼촌이 딸 아이를 성폭행했고, 아이는 그때부터 말을 안 하게 됐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통상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가족 내 성(性)폭행은 가해자가 절대적인 압력을 행사하면서 피해자의 입을 봉쇄한다. 반면 가해자는 성폭행이란 범죄를 저지른 뒤에도 피해자로부터 죄를 추궁받고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 특히 근친 강간은 사회적으로 절대 금기 사항이라 온 가족이 쉬쉬하며 은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족 내 성폭행이 은밀하게 장기간·반복적으로 자행되는 이유다. 물론 피해자의 후유증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설마'하는 우려와 달리 가족 내 성폭행은 드물지만은 않다. 실제 한국내 청소년 1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7%가 근친상간 경험을 고백했고,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실 등에 근무한 의사 중 53%가 가족 혹은 그에 준하는 어른으로부터 성폭행당한 미성년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빙산의 일각처럼 보고되는 사례들을 보면 국내 근친 강간의 가해자는 친아버지인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친남매, 의붓 아버지, 모자간, 부자간 등 다양하다. 의학적으로 근친 강간은 피해자가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응급 상황'으로 분류된다. 만일 전문가가 조기에 개입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치료하고 재발을 막지 못하면 피해자는 우울증·불안증·수면장애는 물론 반복적인 자해나 자살 시도, 약물 남용 등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철저히 격리시키는 일이다. 슬프고도 비극적인 사실이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소년·소녀를 대상으로 한 가족 내 성폭행은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라면 근친 강간 피해자를 발견하는 순간 전문가가 개입해 인면수심의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격리하고, 지속적인 치료와 지원을 해주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1-14

명의도 고치기 힘든 '나쁜 습관' [황세희 박사의 '몸&맘']

"자기 몸 관리도 못하면서 환자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엘리트 의사의 길을 걸어온 S씨(61) 누나의 애타는 푸념이다. 첨단 현대의학의 진수를 펼치는 자신의 의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한 S씨. 과음과 흡연이 혈관에 직격탄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말술과 줄담배를 즐겼다. 경쟁적인 성격과 인명을 다루면서 초래되는 긴장감을 젊은 시절부터 술·담배로 해소해 온 탓이다. 10년 전, 그는 혈압도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일부터는 일도, 술·담배도 조금씩 줄여야지'란 다짐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내일부터 … '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3년 전, S씨는 진료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의식불명에 반신 마비로 시작한 투병생활은 1년 반을 끌었다. 다행히 병세는 기적처럼 좋아져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오랜 투병 생활은 소득도 있었다. 금연과 금주가 자연스레 이루어졌고 재활치료로 시작된 맞춤 운동도 당연한 하루 일과가 됐다. 안타깝게도 새로 익힌 건강 습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원 업무를 시작한 반 년 뒤부터 한두 개비, 한두 잔으로 시작된 흡연과 음주는 두 달이 넘으면서 발병 전 정량을 되찾았다. 그는 매번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비단 S씨뿐이랴. 폐 질환 명의였던 H교수는 줄담배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결국 폐암으로 사망했고, 간 질환 명의인 K교수의 과음 습관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하다. 또 대장암 수술의 권위자인 P교수의 비만도 심각하다.(그가 대장암 급증의 원인으로 비만을 지목할 때면 만삭처럼 나온 그의 배에 자꾸 눈길이 간다) 특정 분야에서 남다른 의지를 보이며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도 조절 가능해 보이는 욕망, 몸에 밴 습관 하나를 조절 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본능적 욕구는 태아 때부터 뇌에 각인된 탓에 잠깐만 방심해도 수시로 행동으로 표출된다. 식탐을 못 이겨 비만증으로 고생하는 명의들, 순간의 성욕을 못 참아 정상의 문턱에서 불명예 퇴장하는 명사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다. 쾌락을 가져오는 습관 역시 일단 뇌에 '유쾌한 느낌'으로 기억되면 중독을 초래한다. 정신의학계에선 이미 20년전부터 알코올(술)과 니코틴(담배)을 코카인·히로뽕 등 다른 마약과 함께 '물질 중독'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독 상태에선 해로운 줄 알아도 결심만으로 벗어나기 힘들며 치료후 재발도 잦다. S씨도 치료된 듯 싶던 술·담배 중독이 재발한 상태다. 지금의 생활이 지속되면 그는 머잖아 또다시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20-01-07

[황세희 박사의 '몸&맘'] '공부, 공부' 하는 엄마 혹시 자기만족 때문 아닌가요

온종일 모든 신경이 아이를 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 어머니들. 저마다 맹모삼천지교가 대수냐며 1등 엄마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평가는 객관성을 띠어야 인정받기 마련이다.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하는 당신. 과연 아이에게, 또 아이의 미래를 위해 몇 점짜리 엄마일까? 가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자녀 뒷바라지에 쏟아붓는 A씨(43). 봉급생활자인 남편과 함께 힘겨운 짠돌이·짠순이 생활을 한다. 하루는 A씨 가족의 상황을 딱하게 느낀 친구가 A씨에게 물었다. "도대체 아이에게 바라는 게 뭐야?" "그런게 어딨어? 다 저 잘되라고 하는 거지." "아이가 만족해?" "공부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어? 싫어하지만 억지로 시키는 거지." "그러다 아이가 잘못되거나 원망하면 어떡해?" "잘못될 리가 있어? 그리고 자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원망은 무슨 원망?" A씨의 확신에 찬 대답에 친구는 말문이 막힌다. 그간 친구는 A씨 아들(중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짜증과 피곤함이 뒤섞인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친구는 A씨 아들을 만나 말을 건넨다. "부모가 널 위해서 헌신하니까 좋지?" "아뇨! 공부, 공부 하는 엄마가 지긋지긋해요." " 다 너 행복하라고 그러시는 건데?" "엄마가 원하는 건 내 행복이 아니라 자기 친구들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거예요." "…." 자식 사랑이란 명분을 앞세워 자만심에 사로잡힌 어머니라면 '내가 정말로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좋은 엄마일까'를 자문해 보자. 자식 사랑의 첫걸음은 아이의 눈높이로 생각을 경청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섯 살이면 다섯 살, 열 살이면 열 살 아이의 평균적인 생각부터 익히고 파악해야 한다. 어린이도 자신의 연령과 지능 수준에 따라 자신의 일에 대한 의견과 주장이 있다. 여기에 순응해야 매사가 효과적이다. 예컨대 동요를 듣고 따라 해야 할 나이에 악기를 가르치면 아이는 음악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기 쉽다. 힘들고 싫은 과제를 강요받은 아이는 처음엔 스트레스·좌절·분노심에 시달리다 상황이 반복되면 불안·우울·정서 불안·반항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아이가 "힘들다"는 말을 할 땐 왜 힘들다고 하는지 끝까지 들어주고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아이가 꼭 해야 할 일(등교·숙제 등)이라면 필요성을 반복 설명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조건 "열심히 하라" "앞서 가라"고 채근하기보단 지능검사·심리검사로 객관적 능력부터 평가한다. 어린이의 심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개발시키는 방법은 또래와의 놀이다. 놀이를 통해 사회생활·문제 해결 능력·상상력·지능이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어린이에게 놀이와 공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자녀가 놀이를 충분히 즐기려면 하루 스케줄이 느슨해야 한다. 예컨대 유치원생이라면 양치질과 세수, 엄마와 함께 방 정리하기, 초등학생은 학교 숙제, 준비물 챙기기, 자기 일 정리정돈 등 꼭 해야 할 일만 정해진 시간에 하도록 스케줄을 짜야 한다. 놀 때 행복감을 느끼면 각종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진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2-24

[황세희 박사의 '몸&맘'] 사랑 앞에 나이는 없다…당당하게 즐겨라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특히 건강하게 노후를 맞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노년기 성생활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발정기가 따로 없다. 사시사철 생식과 무관한 성행위를 즐기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되는 한 식욕과 마찬가지로 성욕도 존재한다. 다만 성욕의 강도는 젊은 시절보다 줄어든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더불어 지속된다는 성생활, 어떻게 하면 노년기에도 만끽할 수 있을까. "젊을 땐 할머니·할아버지는 성생활을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내가 할머니가 되고 보니 그건 '신화'에 불과한 오해였어요"라고 털어놓는 73세 할머니 S씨. 77세 남편과 1~2주에 한 번은 꼭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사랑을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 노화가 성생활의 장애물은 아니다. 단지 남성의 경우, 노화로 인해 성행위를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길어지고 성기의 크기와 강직도가 떨어질 뿐이다. 여성은 질이 위축되고, 성교 시 분비물이 감소되는 변화가 온다.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선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남성은 발기할 때까지 전희 시간을 오래가지는 게 좋고 여성은 질의 윤활도를 높이기 위해 에스트로겐 치료나 성행위 직전에 질윤활제를 사용해야 한다. 노년기 성생활을 저해하는 주범은 성기능을 악화시키는 당뇨병·심장병·고혈압 등 혈관질환이다. 이런 지병이 없으면 80대나 90대에도 성생활은 가능하다. 노년기 성생활을 위해선 노인이 돼도 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키며 성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규칙적인 성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청년 시절엔 몇 년씩 금욕생활을 해도 성기능이 유지되지만 노년기엔 반 년만 금욕해도 발기장애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의 적극성도 필요한데 특히 노년기에 새로 짝을 찾은 경우보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노인 부부에게 필요하다. 오래된 성 파트너는 성적 자극을 위해 서로 포옹·키스·애무 등 적극성을 띠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젊은 층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등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 노인들만 모여 사는 농촌보다는 젊은 층과 어울려 지내는 대도시 노인들의 성생활이 더 활발하다.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성행위는 단순한 성욕 분출보다는 사랑을 교감한다는 의미가 크다. 실제 젊은 사람들은 애정 없는 부부간에도 성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이 나쁜 노년기 부부가 성행위를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평상시 배우자에 대한 배려심·의견 존중 등을 통해 부부간 애정을 높여야 한다. 역으로 성행위는 노년기 사랑을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실제 노년기라도 각방을 쓰는 부부보다 한 이불에서 지내는 부부는 불화가 적다. 사랑과 성은 죽는 날까지 불가분의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2-17

[황세희 박사의 '몸&맘'] 자기 합리화가 위험한 이유

학문적 업적과 따스한 인품을 겸비한 A교수는 존경받던 의학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재직 중에 병사했다. A교수가 몸에서 이상을 느낀 건 사망하기 1년전 쯤이었다. 그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명의에게서 최첨단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료 대신 업무에 매진했다. 행여라도 '난치병 진단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고약한 질병일수록 환자에게 매정한 게 속성이다. A교수는 날로 핼쑥해졌고, 제자들은 병원 진찰을 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매번 "바삐 살고 운동도 즐긴 덕에 날씬해지는 중"이라며 충고를 일축했다. 시간은 흘러 녹음이 대지를 짙푸르게 채우던 초여름이 되자 기력이 다한 A교수는 마침내 병원을 방문했다. 진단은 말기 암. 그는 그해 가을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 비단 A교수뿐이랴. 어느날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손에 힘이 빠져 찻잔을 떨어뜨렸던 B교수의 사연도 비슷하다. 20분 후 마비가 풀리자 B교수는 '혹시 뇌졸중 전조 증상이 아닐까'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아마 피곤 탓일거야'라며 스스로 위로하곤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달 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난치병 선고를 받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고통·공포·분노심을 느낀다. 현실을 인정하고 차분히 대처하기엔 닥쳐온 불행이 너무 큰 탓이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뇌는 재빨리 회전해 '뭔가 잘못됐을 것'이란 잠정적 결론에 도달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인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다. 이런 심리적 반응은 정신의학적으로 '부정(denial)'에 해당하는데 중병은 물론 명백한 나의 잘못·죄책감·수치심·금지된 욕망이나 충동 등 힘든 상황을 직면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신체의 자기방어 기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을 꾸리는 과정에서 본능적 욕구와 현실·도덕 사이를 오가며 늘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따라서 번뇌 없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도 항상 애쓰게 마련인데 이를 위해 대뇌는 수시로 각종 정신·심리적 기교를 동원한다. 인정하기 싫은 상황을 외면하는 '부정', 자신의 잘못을 그럴듯한 설명으로 포장하는 '합리화', 성적·폭력적 충동을 예술로 표출하는 '승화', 엄연한 사실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끔 변형시키는 '왜곡' 등은 모두 심리적 기교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저런 정신적 방어기전을 동원해 일단 내 마음이 편해지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여전히 번뇌와 갈등을 유발할 불씨는 남는다. 개인의 질병이건 사회적 병리 현상이건 고통스럽더라도 조기 진단, 조기 치료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임을 정치권도 하루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2-03

[황세희 박사의 '몸&맘'] '마술 같은 치유'란 없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암 세포가 폐와 간으로 전이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76세 노모를 위해 딸인 A씨는 비법을 찾기 시작했다. 명의로 알려진 담당 의사가 노모의 여생이 6개월 이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A씨는 그때부터 인터넷 사이트와 아는 사람을 통해 마법의 생명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찾다보니 의외로 '나는, 혹은 누구누구는 이런 식으로 암을 극복했다'는 각종 사연과 민간요법은 많았다. 그녀는 각종 정보를 모아 엊그제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수집한 비법(?) 중 가장 그럴듯한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최후의 심판관(?)으로 나를 지목한 이유는 "많은 정보를 다루는 기자가 진위를 파악하는 데 적합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A씨는 매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지성인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으로 인해 가장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현대의학이 항복한 불치병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풍문 처방에 의존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모든 노력은 헛되게 마련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은 주체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왜 그럴까? 우선 인간은 누구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설사 기대했던 기적이 안 일어나더라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감은 생긴다. 엉터리 비법도 순기능 역할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가치는 있는 걸까. 물론 아니다. 잃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손실은 삶을 정리해야 할 귀중한 순간을 헛된 비방을 받느라 소모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또 비방을 전파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은 환자의 고통을 배가하는 것은 물론 짧은 여생마저 단축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경제적 손실도 문제다. 헛된 풍문 처방중엔 환자·보호자의 심약한 심리를 볼모로 돈을 벌겠다는 고약한 상술이 연관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씨 어머니같은 환자에겐 병세를 하루 빨리 알려줘 남은 시간 동안 가족·친지와 함께 사랑을 확인하면서 인생을 회고하고 정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실을 호도하는 건강 미신은 불치병 환자 주변에만 창궐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명의와 상담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거나 " 더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하자" 는 식의 답답한(?) 해결책만 제시하는 고질병 환자·보호자 주변을 호시탐탐 맴돌며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실제 롱다리 선호 붐을 타고 자녀의 키를 10㎝씩 키워준다는 각종 약이나 기구, 만성병을 고친다는 획기적인 치료법, 휜 다리·O형다리·척추 이상처럼 뼈의 이상을 손쉽게 교정한다는 비법 등은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명의가 해결하지 못하는 병을 기적처럼 고쳐주는 약이나 시술이 있다면 개발자는 이미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을 것이다. 일례로 타고난 최종 신장보다 단 5㎝만이라도 확실하게 더 키워주는 약이나 비법은 아직 없다.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명의의 조언을 인정하고 독버섯처럼 파고드는 건강 미신을 퇴치하는 길이야말로 난치병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1-26

[황세희 박사의 '몸&맘'] 사이코패스 치료가 어려운 이유

사이코패스는 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사이코패스에겐 의리나 양심이 없다. 남의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의식이 없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다. 물론 반성도 안 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일엔 열심이라 범행은 뒤탈 없도록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실행한다. 타고난 심성이 고약하고 냉혹한 사람들인데 잘못된 훈육도 한몫한다. 따라서 사이코패스를 예방하려면 우선 천성은 차치하고라도 출생 후 도덕적 기준이 정립되는 12세 이전까지 싸움·규칙 위반·도벽·거짓말 등을 철저히 금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일단 성인으로 자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고치기 힘들다. 정신과 전문의도 의사 치료보다는 교도소가 해결책이란 절망적인 말을 한다. 정신과의사가 정신이 이상한 사이코패스 치료를 포기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와 사이코(psychosis=정신병)의 차이를 알면 납득이 간다. 흔히 '미쳤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사이코는 생각이 지리멸렬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근거 없이 '나를 미워한다'거나 '국정원이 감시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또 가족의 죽음, 집안의 경사 등의 상황에서도 감정 표현이 없다. 이 모든 괴이한 행동의 원인은 어느 순간부터 뇌 기능이 고장나 병든 탓이다. 따라서 약물로 뇌 기능을 고쳐주면 생각과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간혹 사이코가 흉악 범죄를 잘 저지른다는 오해를 사는 이유는 신문·방송·영화 등에서 종종 그런 식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정신병인 정신분열병만 해도 환자는 겁이 많고 사람을 피해 혼자 있으려 한다. 자연 범죄율도 일반인보다 낮다. 물론 이들도 범죄를 저지르는데 주로 '저사람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나를 해치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또 약물치료로 제 정신이 돌아오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완전 범죄를 계획할 정도로 생각이 논리적이다. 그들과 대화하고 어울려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긴 힘들다. 물론 교육을 못 받은 사이코패스는 쉽게 화 내고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지능이 좋은 사이코패스는 목적 달성을 위해 얌전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도 안다. 그래서 주변의 신임을 잘 얻는다. 말 주변이 좋을 경우 능숙하게 남을 속인다. 실제 범죄를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중에는 연쇄살인범보다는 반복적인 사기·폭력·강간·절도 등의 범죄자가 더 많다. 물론 고차원적인 지능 범죄로 법망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1-19

[황세희 박사의 '몸&맘'] 성욕과 보수주의

인터넷 포르노물을 즐겨 보는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가졌을까. 성적으로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을까, 아니면 보수적인 사람들의 반란적 행동일까. 하버드 경영대 벤저민 에델만 박사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유료 포르노 사이트에 가입한 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유타주(1000가구당 5.47명)라는 연구 결과를 '저널 오브 이코노믹 퍼스펙티브스'에 발표해 주목을 끈다. 유타주는 음식점에서 술을 안 팔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물론 유타주에 국한된 일은 아니며,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남녀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다른 지역들 역시 진보적인 지역보다 인터넷 포르노물 애용자 비율이 높았다. 정치적 성향도 비슷해 인터넷 야동 애용자가 많은 10개 주 중에선 8개 주가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존 메케인 후보를 지지한 반면 야동을 적게 본 10개 주 중에선 6개 주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에델만 박사는 "유타주 주민들이 유난히 포르노물을 좋아해서라기보다 보수 성향이 강할수록 인터넷이 아닌 집 밖 저잣거리에서 포르노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에 대한 본능적 호기심과 욕망은 인간의 두뇌에 각인돼 있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책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다만 해소 방법이 사회·문화적으로 다를 뿐이다. 정신의학적으로 건강한 성은 '사랑'과 '친밀감'이 전제돼야 하며 성행위는 이를 완성하기 위한 촉매제다. 따라서 성에 대해 지나치게 억압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개방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열등감·불만·무력감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인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일탈된 행동으로 성욕을 충족시키기 쉽다. 예컨대 음담패설을 즐기고 성능력을 과시하는 사람 중엔 실제 성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음담패설이 성적인 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통로인 셈이다. 남의 성행위를 훔쳐보는 관음증, 타인에게 성기를 노출하는 노출증 등 금기된 성행동을 즐기는 사람 역시 인격에 문제가 있다. 성에 대한 인식은 인격과 더불어 형성되기 때문이다. 실제 성 문제가 있는 사람의 정신을 분석하면 콤플렉스, 유년기 성폭행 경험, 성 호르몬 장애, 성기능 장애 등 다양한 원인이 발견된다. 인간의 내면엔 선악과를 먹고싶은 원초적 유혹도 상존한다. 금지된 행위에 대한 호기심, 터부를 깰 때 느끼는 흥분과 희열 때문이다. 이런 유혹은 초자아(도덕과 양심)가 죄책감을 발동해 제어하지만 유혹은 심연에 남는다. 따라서 인간의 본능이나 원초적 유혹은 적절한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해소할 묘안을 찾아야 한다. 마냥 엄격한 잣대나 금욕생활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병적인 형태로 폭발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욕망과 유혹을 건전하게 발산할 분출구로 청소년에게 격정적인 스포츠를, 또 적정 연령의 남녀에게 혼인을 권하는 이유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1-12

[황세희 박사의 '몸&맘'] 부모에게 손 벌리는 자식

우리 사회의 전통적 혈연주의는 성인 자녀의 교육비와 용돈은 물론 결혼 자금과 주택 구입비까지 부모가 최대한 후원해야 된다는 편견을 양산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부모 중엔 등골이 휘다 못해 법적·윤리적 죄악을 저지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 증여를 마다하지 않는 총수, 자격 없는 자녀에게 교수 자리를 대물림하려는 학자, 뇌물·탈세 등을 일삼는 사회 지도층 인사, 친구·친지 심지어 형제간 의를 상하면서까지 '쩐의 전쟁'을 벌이는 보통 사람 등 계층도 다양하다. 과식하면 비만과 성인병이 초래되고 몸에 좋다는 운동도 지나치면 관절이 손상된다. 자식 사랑 역시 과하면 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정으로 맺어진 듯 보이는 대한민국 부모 자식 관계가 사실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숭실대 정보사회학 정재기 교수). 정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 국가를 대상으로 분가한 자녀가 60세 이상 된 부모를 찾아가는 요인을 조사한 결과 유독 우리나라만 부모의 소득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의 발길은 뜸하고, 부모의 소득이 1% 증가하면 자녀가 부모를 찾을 가능성은 2.07배 높았다. 반면 다른 OECD 국가에선 분가한 성인 자녀들이 부모의 소득과 무관하게 부모를 만났다. 구미 선진국에선 성인이 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당연시 여겨진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를 돈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 교감을 위해 만난다. 하지만 결혼한 자녀에게까지 경제적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가 많은 대한민국에선 대부분의 자녀가 돈 문제는 가족과, 정서적 교감은 친구·동료에게서 구한다. 결과적으로 금전적 거래가 없는 부모하고는 만날 일도 적어지는 것이다. 성인 자녀와 부모의 바람직한 관계는 책임감과 경제적 자립을 전제로 한다. 17, 18세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됐던 농경 사회와 달리 고학력 사회인 지금은 실질적인 성인이 되는 시기가 4~5년 늦춰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취직하고 결혼한 뒤에도 좀 더 편하게 살고자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태도는 건강한 정신 상태가 아니다. 자녀에겐 미숙하고 불안·초조한 정서가, 부모는 열등감과 불안감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심리 상담을 통해 정서 문제를 극복하고 건강한 부모 자녀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도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고 부모 자식 관계도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1-05

[황세희 박사의 '몸&맘']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 치료가 우선

"딸 학교 보내기가 겁나요." 어린 딸을 둔 어머니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실 어린이 대상 성범죄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빈발한다. 한 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낯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사건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 통계에 의하면 10~20%의 어린이가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본다. 성범죄는 사춘기 무렵 싹이 보이기 시작해 평생 지속된다. 그 결과 범인의 숫자가 적어도 피해자는 많다. 선진 각국에서 성범죄자에게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는 이유다. 정신의학적으로 성범죄자는 자신의 행동이 패륜 범죄임을 안다. 하지만 욕망을 실천하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워 결국 성범죄자로 전락한다. 특히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없는 가해자,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성범죄 욕망을 억제하긴 힘들다. 그간 의학계에선 성범죄자에 대해 이런저런 치료법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아직 특효약이나 치료법이 없다.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해자가 자신의 병적인 범죄 행위를 '고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정신과 상담도 범죄 행위로 인해 강제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러니 인권을 존중한다는 선진국에서조차 성범죄,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겐 발생 초기부터 신상을 공개하고 출소 후 전자 발찌를 착용시킨 뒤 주거 지역을 제한한다. 때론 비인도적 치료(?)란 비난을 무릅쓰고 약물로 아예 성욕 자체를 없애버리는 화학적 거세도 강행한다. 의학적으로는 성범죄 발생 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앞서 피해 어린이에 대해 '응급 치료'를 해주는 게 급선무다. 실제 피해 어린이는 지진이나 전쟁을 경험할 때처럼 큰 충격을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을 겪어 멍해지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린다. 또 불안·초조·공포·우울 등 정서불안증을 보이거나 파괴적·공격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에게 "그 아저씨를 왜 따라갔어?" 등 비난을 하거나 피해 상황을 반복해 연상시키는 것은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의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또 다른 문제점은 취중 강간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관대함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취중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씌울 근거는 전무하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들뜨고 해방감에 젖어 무리한 행동을 하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취했다고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이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취중엔 그 사람의 평상시 인격이 강화돼 나타난다. 그러니 취중 잘못에 대해 감형 판결을 한다는 것은 똑같은 잘못에 대해 인격자보다 비인격자의 형기를 줄여주는 것과 같다. 불행한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해선 사회지도층부터 어린이 성폭력 사건과 취중 잘못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피해 어린이와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대책도 시급하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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